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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목회 단상</title>
      <subtitle type="html">지준오목사님 목회단상-칼럼</subtitle>
      <updated>2012-02-06T15:23:58-07: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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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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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1-04-30T14:01:14-06:00</published>
      <updated>2011-06-23T14:06:27-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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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지난 금요일입니다. 어느 분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빵이 두 쪽이 남았습니다. 제가 충분이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여 시켰는데 그만 음식을 남긴 것입니다. 그 두 쪽의 빵은 손님 테이블에 왔던 빵이라 다시 사용되지 못하고 분명히 쓰레기 통으로 버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갔던 분의 권면으로 네프킨에 그 두 쪽의 빵을 사무실로 싸와, 오후 늦게 출출하던 차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공교롭게도 Bizarre Food (이상한 음식)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미국에서 생산되는 야채와 과일의 40%가 사용되지 못하고 그냥 쓰레기 통속으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Andrew라는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 세계를 다니며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음식, 그러나 미국사람에게는 Bizarre Food (이상한 음식)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보고 먹어봤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진짜 Bizarre Food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조금 상했다고 해서, 이 지구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San Francisco의 식품점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열어 보여 주었는데, 제가 봐도 멀쩡한 바나나들 토마토 야채들이 잔뜩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자기들이 판단하기에 상한 음식들을 상품으로 팔수 없어 그렇게 처리했겠지만, 이런 일은 우리의 평소 삶에도 많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 남은 두 쪽의 빵을 식당 테이블에 그대로 두고 왔다면 그것은 쓰레기 통속으로 버려졌을 것이고 저는 또 하나의 Bizarre Food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섬김을 통하여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나의 부주의로 인하여 또 다른 Bizarre Food이 생겨나지는 않을까요? 같이 돌아 보면 좋겠습니다.&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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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도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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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1-04-09T09:41:47-06:00</published>
      <updated>2011-04-09T09:41:47-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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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StartFragmen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주보에 나오는 칼럼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이번 주 중에 Los Angels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 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한 통의 전문을 받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내용인즉 기독인으로 기도교인 다운 삶을 살자는 내용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현제 미국에 4,000개가 넘는 한인교회가 있고 많은 분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공중도덕과 사회질서를 잘 안 지킴으로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배타적이고 불협화음이 심한 폐쇄적인 사회로 인식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그래서 이러한 일을 없애기 위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먼저 바르게 행동해 달라는 몇 가지 지침 사항도 받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요즘 우리교회에서 실행하고자 하는 일과 같은 뜻이기에 이렇게 전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성도에게 부탁하는 말:&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모든 일에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서 가정과 직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범이 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절제하며 검소하게 살며 공중도덕과 사회질서를 지키고 국가가 부과한 납세 의무를 정직하게 하고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약자를 도우며 삽니다. 그러기 위해서 헌혈, 장기 기증 등에 자진 참여하고 교회에 대한 헌금 외에 각종 단체에도 기부하며 자원봉사활동도 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교회에게 부탁하는 말:&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강단에서는 신앙에 대한 말씀 외에 이 땅에서 바르게 사는 도덕과 윤리도 가르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주 중에는 교회의 모든 시설과 장소를 개방해서 사회가 이용하도록 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교회 헌금을 해외선교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의 구제와 사회를 위해서도 사용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교회 운영을 민주적으로 해서 하나된 모습으로 분열 많은 한인 사회와 단체의 모범이 됩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lt;/span&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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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Halloween의 유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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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10-23T14:36:48-06:00</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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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우리 교회 주보 뒤에 쓰는 칼럼을 퍼 왔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lt;!--StartFragmen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올해에도 어김없이 Halloween이 다가왔습니다. 이날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의 아들에게는 괴로운 날입니다. 학교에서는 할로윈 행사를 한다고 자기 친구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분장을 하고 또 Party도 하고 거리 행진도 하는데 제가 제 아들에게 Halloween의 유래를 말하면서 크리스천인 우리가 함께 할 행사가 안이라고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에게 올 해는 할로윈 행사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Halloween Party를 하는 동안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많이 괴로운 것 같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할로윈의 유래는 기원 전 5세기경 유럽의 영국과 아일랜드 지방을 지배했던 켈트 족(The Celts)의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 지역은 겨울이 길어 10월 31일을 여름의 마지막으로 보고 11월 1일을 새로운 해의 첫날로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수확의 계절이 끝나고 어둡고 추운 겨울이 시작 되는 이 10월 31일에는 태양의 기운이 다하여 저승의 세계를 구분하는 장막의 두께가 얇아져 악령들이 그 장막을 뚫고 이 세상을 찾아와 사람들을 괴롭히고, 곡식을 망치며, 농장 동물들을 죽인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거처로 삼는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온 마을 사람들은 이 날 육체를 점령당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악령들로부터의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달래는 여러 가지 괴의한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의 몸을 악령처럼 꾸며서 그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음식을 준비하여 악령들을 대접하며 온갖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것이 요즘에 와서 Halloween의 대표적인 놀이인 귀신처럼 분장하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는 ‘Trick-or-Treating&apos;이 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FONT-WEIGHT: bold;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할로윈데이는 상업성을 두고 볼 때 크게 펼쳐지는 행사입니다. 그리고 많은 크리스찬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로윈데이는 한마디로 귀신을 위로하는 절기로 그리스도인들이 무분별하게 동참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 lang=&quot;EN-US&quot;&gt; &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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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낙엽을 밟으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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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9-28T20:39:18-06:00</published>
      <updated>2010-09-28T20:39:18-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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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세미하게 들려오는 &apos;사각 사각 바삭 바삭&apos;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amp;nbsp; 발밑에서 들려오는 낙옆을 밟는 소리입니다.&amp;nbsp; 오늘 오랫만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저의 집 근처에 있는 Centennial Park의 산책길을 걸었습니다.&amp;nbsp; 어느 듯 가을의 소리가 걷는 저의 귓전에 밀려 오면서 싸여가는 낙엽을 밟는 낭만도 누렸습니다.&amp;nbsp; 낙옆을 태우는 그 맛이 가을의 풍취라면 낙옆을 밟는 그 소리는 가을을 누리는 소리입니다.&amp;nbsp; 그동안&amp;nbsp;푹푹찌던 한 여름의&amp;nbsp;무더위에 눌려있음으로 인해 벌써 낙엽이 생겼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놀라운 일이지만, 지난 목요일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였습니다.&amp;nbsp; 모든 것을 말려버릴듯한 뜨거운 햇살과 한 방울 남은 땀까지 짜아낼듯한 무더위로 인하여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고 지금도 그저 한여름이겠거니 하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은 계속되어 왔고 벌써 가을의 문턱에 도달하였습니다.&amp;nbsp; 우리 기독교가 갖고 있는 시간관은 어느 종교의 돌고 도는 시간관념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확실한 시간관입니다.&amp;nbsp; 그리고 지금도 우리 기독교의 시간은 그 끝을 향하여 쉼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amp;nbsp;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날이 올것이라면, 우리는 그 순간을 예비하고 있습니까?&amp;nbsp;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amp;nbsp; 그리고 이 질문에 우리는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amp;nbsp;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천국과 지옥의 두 길에서 한 길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amp;nbsp; 우리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우리가 어떠한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자유대로 선택을 하였습니다.&amp;nbsp;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끝난 후에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이 갈림길에서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의 갈 길이 결정됩니다.&amp;nbsp;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어 결정하시는 그 길을 위하여 지금부터 믿음으로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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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하는 로럴의 교우님들과 함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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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8-04T07:19:53-06:00</published>
      <updated>2010-08-04T07:31:03-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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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저와 이남석 목사님은 지금 목회학박사의 마지막 세미나를 위해 Kentucky에 소재한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 와있습니다.&amp;nbsp; 지금이 수요일 아침인데 새벽에 눈을 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다 우리 교우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amp;nbsp;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말은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의 중요성을 말하는 속담입니다.&amp;nbsp; 하나님 나라의 복음사역은 이것과 너무 흡사합니다.&amp;nbsp; 즉, 온 천하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나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amp;nbsp; 한 사람의 중요성이라는 간단한 기록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amp;nbsp; 정확한 기억이기를 바라며 적습니다.&amp;nbsp; 1776년 미국의 국어를 결정할 때, 한 표가 독일어 대신에 영어가 되도록 했구요, 1845년 한 표가 대통령 Andrew Johnson을 탄핵의 위기에서 구했습니다.&amp;nbsp; 1923년 한 표가 나찌당의 권력을 제 2차 세계대전의 장본인인 아돌프 히틀러에게 주었습니다.&amp;nbsp; 한 사람의 한 표로 인하여 세워진 세계의 역사입니다.&amp;nbsp; 우리는 분명히 이 세계를 구성하는 한 조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amp;nbsp;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 조각의 가치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힘입니다.&amp;nbsp;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복음 사역에도 마찬가지입니다.&amp;nbsp;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님이 빵을 만드시는 것을 봤습니다.&amp;nbsp; 널찍한 함지박에 약간의 밀가루를 넣고 물을 조금 붓고 반죽을 합니다.&amp;nbsp; 또 약간의 소금과 달달하게 하는 사카린이라 불리우던 설탕가루를 뿌리고는 계속 반죽을 합니다.&amp;nbsp;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조그만 병에서 무언가 하얀 가루를 한 숟가락 떠서 넣고는 몇 번을 더 주무르시고는 삼베 천으로 덮고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씌어 놓습니다.&amp;nbsp; 그리고 한참 후에 보니 그 넓은 함지박에 밀가루가 하나 가득 부풀어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amp;nbsp; 한 숟갈의 적은 누룩이지만 이 적은 누룩의 역할로 밀가루 반죽 전체가 변화된 것입니다.&amp;nbsp; 오늘 아침 일어나 마태복음을 읽었는데 13장 33절의 말씀이 그렇게 눈에 들어와 묵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amp;nbsp; &quot;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quot;&amp;nbsp; 이것은 아주 짧은 메시지지만 우리 모두에게 누룩과 같은 천국의 혁명가가 되라는 엄청난 Power가 담긴 혁명적인 메시지입니다.&amp;nbsp; 사랑하는 로럴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이 시대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혁명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amp;nbsp; 승리의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정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amp;nbsp; 그리고 사랑합니다.&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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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름다운 당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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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7-26T19:49:30-06:00</published>
      <updated>2010-07-27T14:45:01-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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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지난 주일 오후 우리교회 청년들과 이곳 Maryland 지역의 연합 청년들과의 Softball Game이 있었습니다.&amp;nbsp; 오후 5:30부터 모이기 시작하여 6시가 조금 넘은 후에 Game을 시작했습니다.&amp;nbsp; 처음 계획은 5회까지만 하기로 했는데 너무 재미 있어서 7회까지 하게되었습니다.&amp;nbsp; 양팀의 선수들 서로 자기 Team의 승리를 위해 비장한 각오로 시작하였습니다.&amp;nbsp; 또한 각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도 목청껏 자기 팀을 위해 응원했습니다.&amp;nbsp; 그런데 4회를 지나면서 부터는 두 팀이 하나가 된 양 서로을 위해 응원해 주는 것입니다.&amp;nbsp;&amp;nbsp;선수들이 잘 했을 때는 팀을 떠나 박수를 쳐주고 실수를 하였을 때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격려의 응원을 보냈습니다.&amp;nbsp; 우리는&amp;nbsp;Softball이라는 Game을 통하여&amp;nbsp;천국의 그림자를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amp;nbsp; 1시간 30분 이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교회에 돌아오니, 우리교회의 몇몇 집사님들이&amp;nbsp; 아주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주셨습니다.&amp;nbsp; 그 누가 강요하거나 부탁한 것이 아니지만 젊은이들을 위해 스스로 자원하여 사랑의 만찬을 푸짐하게 차려 주셨습니다.&amp;nbsp; 특히 Grill에서&amp;nbsp;고기와 함께&amp;nbsp;볶아낸 &apos;김치 볶음&apos;은 최고의 명품이었습니다.&amp;nbsp; 또한 가족의 결혼 관계로 멀리 여행을 떠났던 어느 집사님은 그곳에서 돌아오자 마자 차에서 짐도 내리기 전에 교회부터&amp;nbsp;둘러보며 사랑을 나눴습니다.&amp;nbsp; 이러한 사랑과 섬겨주심에 저희들은&amp;nbsp;마냥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amp;nbsp; 감사합니다.&amp;nbsp; 그리고 모두에게 &apos;아름다운 당신&apos;이라 말하고 싶습니다.&amp;nbsp;&amp;nbsp;제가 즐겨 애독하는 하나님 말씀에 이런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amp;nbsp; 빌립보서 2장 2절에서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amp;nbsp; &quot;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amp;nbsp; &amp;nbsp;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quot;&amp;nbsp; 지난 주일 함께 Game을 하였던 친구들이나 그들을 위해 섬겨주기를 기쁨으로 한 모든 분들의 마음이 바로 이 말씀에 나오는 &quot;남을 낫게 여기&quot;&apos;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amp;nbsp;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당신은 &apos;아름다운 당신&apos;입니다.&amp;nbsp;&amp;nbsp;이런 복음성가의 가사를&amp;nbsp;달아봅니다.&amp;nbsp; &quot;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주의 은혜나누며 예수님을 따라 사랑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하나님이 가르쳐준 한 가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quot;&amp;nbsp; 또 다른 복음성가입니다.&amp;nbsp;&amp;nbsp; &quot;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quo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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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랑이 vs 황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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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7-21T17:42:21-06:00</published>
      <updated>2010-07-21T19:05:47-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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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quot;전도사님, 호랑이 두 마리가 전도사님을 잡아 먹으려고 뛰어 온다 생각 마시고 황소 두 마리리가 어슬렁 거리며 따라온다고 생각하며 말씀하세요.&quot;&amp;nbsp; 저의 신학교 초창기 시절 저희와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amp;nbsp; 신학교 초창기 시절 섬기던 교회에서 금요예배를 맡아 인도했습니다.&amp;nbsp; 가슴의 뜨거움이 머리의 냉정함을 앞서던 시절이라 그런지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서게되면 제 자신도 control 할 수 없는 열기에 휩싸여 보통때도 빠르게 말하는 저의 습관을 넘어서 무척 말이 빨라만 졌습니다.&amp;nbsp; 그래서 그 집사님이 저의 설교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다며 이런 권면의 말을 제안한 것입니다.&amp;nbsp; 호랑이가&amp;nbsp;아닌 황소 두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따라 온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말하는 것입니다.&amp;nbsp; 그래서 그 당시 설교 노트를 보면&amp;nbsp;비어있는 옆 공간에 빨란 볼펜으로&amp;nbsp;&quot;천천히-황소 두 마리&quot;를 크게 적어 놓았었습니다.&amp;nbsp;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말씀을 전할 때 천천히 또박또박 전하고자 하는&amp;nbsp;제 자신과의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amp;nbsp; 지난 번 칼럼에서 설교 클리닉에 참가하여 명설교가 몇 분들의 설교 동영상을 보면서 찾아낸 저에게 없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amp;nbsp; 바로 이 부분입니다.&amp;nbsp; 그분들의 설교를 들으니 모두 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amp;nbsp; 이것을 느끼면서 제 자신에게 다시 한번 부탁을 하였습니다.&amp;nbsp; &apos;강대상에 올라가면 눈에 보이는 성도님들을 무조건 황소로 생각하라. &amp;nbsp;그리고는 천천히 말씀을 전하라.&apos;&amp;nbsp; 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지만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amp;nbsp; 그리고 지금도 그 부족한 부분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amp;nbsp; 그런데요 습관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 자신을 통하여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amp;nbsp; &apos;몸에 배인 습관 참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apos;&amp;nbsp;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amp;nbsp; 그런데 이것을 긍정적으로&amp;nbsp;바꾸어 생각한다면 이럴껐입니다.&amp;nbsp;&amp;nbsp;나에게 주님을 향한 좋은 믿음의 습관, 모이기에 힘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는 전도생활과 같은 좋은 믿음의 습관이&amp;nbsp;생긴다면, 가슴의 뜨거운 열정 만큼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입니다.&amp;nbsp; 하나님이 보시기 좋은 믿음의 좋은 습관 만들기에 힘써보시는 것이 어떨까요?&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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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설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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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7-15T19:38:26-06:00</published>
      <updated>2010-07-16T09:25:40-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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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1박 2일로 설교 클리닉을 다녀왔습니다.&amp;nbsp;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는 가장 성스로운 사명입니다.&amp;nbsp; 하나님의 말씀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 만큼 고귀한 사명이 어디 있겠습니까?&amp;nbsp; 그래서 그런지 어떤 분은 이런 농담까지 했습니다.&amp;nbsp; &quot;목사에게서 설교를 빼앗는다면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 먹사가 된다.&quot;&amp;nbsp; 먹사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목사보다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amp;nbsp;&amp;nbsp;그만큼 설교는 고귀한 사명이며 영광스런 사명입니다.&amp;nbsp; 그런데요 목사에게 있는 이런 영광스런 사명이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amp;nbsp; 설교는&amp;nbsp;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논리나 인간의 계획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amp;nbsp; 그리고&amp;nbsp;나의 욕심을 이루고자&amp;nbsp;설교를 빙자한 나의 계획을 전하면 안됩니다.&amp;nbsp; 설교는&amp;nbsp;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는 사역이기에 이 설교 사역은 늘 저로 하여금 긴장을 갖게 합니다.&amp;nbsp; 그래서 다른 것은&amp;nbsp;몰라도 설교에 대한 세미나가 있다면 저도 가능하면 많이&amp;nbsp;참석하고자 합니다.&amp;nbsp; 아무튼 이번 설교 클리닉을 통하여 저는 새로운 도전을 받았습니다.&amp;nbsp; 즉, 청중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청중이 쉽에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아무리 설교 내용이 좋고 꼭 필요한 말씀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amp;nbsp;청중의 관심 밖에서 하늘 높이 떠가는 뜬 구름이 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 은혜의 단비가 청중에게 내려와야 한다는&amp;nbsp;것입니다.&amp;nbsp; 이번 설교 클리닉에서 현재 명설교가로 알려진 세분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했습니다.&amp;nbsp; 정말 명설교가라는 명칭에 손색이 없는 분들이며 설교였습니다.&amp;nbsp; 세분의 스타일이 다 달랐지만 또한 공통분모도 있었습니다.&amp;nbsp; 그리고 그분들이 갖고 있는 공통분모가 저에게 없는 것이기에 저는 더 많은 도전을 받은 것 같습니다.&amp;nbsp;&amp;nbsp;그분들이 갖고 있는 이 공통분모를 저도 갖기 위해&amp;nbsp;많은&amp;nbsp;연습과 노력을 해야 겠습니다.&amp;nbsp;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amp;nbsp; 그 답은 다음 번 칼럼에 쓰겠습니다.&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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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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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7-07T18:22:25-06:00</published>
      <updated>2010-07-09T12:33:35-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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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화요일 저녁 7:30분에 우리교회 청장년부 성경공부가 있습니다.&amp;nbsp; 지난 화요일 저녁 성경공부를 위해 교회로 가는 도중 제 아내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amp;nbsp; &quot;7시가 다됐는데 올라가는 길은 텅 비었는데 아직도 내려오는 길에 차들이 많네요.&quot;&amp;nbsp; 우리 집에서 교회쪽으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가 별로 있지 않았지만, 교회쪽에서 우리 집쪽으로 가는 길에는 차의 운직임이 정지될 정도로 많았습니다.&amp;nbsp; 그래서 Traffic이 많다는 소리로 그냥 듣고 흘려 버릴 수 있었는데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amp;nbsp; &quot;내려오는 길이라니 어디가 내려오는 길이고, 어디가 올라가는 길이요?&amp;nbsp; 내 생각에는 저 길이 내려오는 길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인것 같은데.&quot;&amp;nbsp; 그러자 제 아내가 대답하기를 &quot;미국의 수도인 Washington DC에서 오는 길이니 내려오는 길이지요.&amp;nbsp;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서울에 올라간다고 하지 않아요?&amp;nbsp; 그러니 미국의 서울인 Washington DC에서 오는 길이니 내려오는 길이지요.&quot; 하는 것입니다.&amp;nbsp; 그러자 제가 반박하기를 &quot;지구를&amp;nbsp;보게되면 북쪽이 항상 위에 있습니다.&amp;nbsp; 그러니 남쪽에서 북쪽으로, 우리 집이&amp;nbsp;Washington DC 보다 조금 북쪽에 있습니다, 오는 저 길이 올라오는 길입니다.&quot;&amp;nbsp; 저는 올라오는 길이다.&amp;nbsp; 제 아내는 내려오는 길이다 하며 이렇게&amp;nbsp;교회에 가는&amp;nbsp; 15분 동안을 실강이를&amp;nbsp;벌이며 갔습니다.&amp;nbsp; 정말 웃기지도 않는 사건입니다.&amp;nbsp; 그죠?&amp;nbsp; 여러분도 혹시 이런 실강이를 벌린적이 있나요?&amp;nbsp;&amp;nbsp;혹시 있다면 왜 일까요?&amp;nbsp; 각자가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amp;nbsp;&amp;nbsp;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상대방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amp;nbsp; 오직 내가 보는 것만 바라보며 자기의 주장을 내세웁니다.&amp;nbsp;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amp;nbsp; 여러사람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amp;nbsp; 생각이 다르고 삶의 철학이 다르고 믿음의 방법도 다릅니다.&amp;nbsp;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였지만 때때로 원치 않는 균열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amp;nbsp; 이럴때 이 다름을 하나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amp;nbsp; 언젠가 제 아내가 이런&amp;nbsp;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amp;nbsp; &quot;모든 믿음의 사람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예수님이 뜻하시는 바에&amp;nbsp;순종한다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분열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을까요?&quot;&amp;nbsp; &quot;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quot;(행 2:46-47)&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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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weet Sixtee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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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6-23T17:06:07-06:00</published>
      <updated>2010-06-23T17:06:07-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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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quot;Sweet sixteen&quo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amp;nbsp; 이 말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모르지만 &quot;Sweet sixteen&quot;는 이 말은 1597년부터 사용되었고 &quot;Sweet sixteen&quot;과 함께하는 생일 파티는 1765년 부터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습니다.&amp;nbsp; 이 sweet sixteen은 소녀가 성장하여 성년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입니다.&amp;nbsp; 그래서 16살이 되면&amp;nbsp;온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축하해주며 기쁨을&amp;nbsp;나눕니다.&amp;nbsp; 여기 시간으로 지난 화요일 오후 한국의 축구가 성년의 분기점을 넘어 섰습니다.&amp;nbsp; 국내에서 뿐만 아리라 Foreign Soil에서 그토록 열망하던 16강에 올라섰습니다.&amp;nbsp; 경기를 보고있던 저도 그 기쁨을 삼키기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를 하느라 허리를 조금 삔것 같습니다.&amp;nbsp; 그런데 16강의 기쁨을 함께 나누던 저의 눈에 TV화면에 비쳐진 모습이 있었습니다.&amp;nbsp; 서로를 끌어안고 펄쩍 펄쩍 뛰는 사람들의 뒤에 8-9명의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둘어 앉아 기도하는 모습니다.&amp;nbsp; 그 모습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한 순간 목이 메여왔습니다.&amp;nbsp; 저는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amp;nbsp; 다른 선수들이 골을 넣어도 기쁘지만 박주영 선수는 골을 넣고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amp;nbsp; 무릎을 꿇고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입니다.&amp;nbsp; 이러한 박주영 선수에게 많은 사람들이&amp;nbsp;기도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는 야유를 보내도 그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골을 넣은 후에는 제일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amp;nbsp; 이러한 모습을 세계인이 바라보는 경기에서도&amp;nbsp;보여지기를 바랬습니다.&amp;nbsp; 그런데&amp;nbsp;이번에도 역시 그는 하나님께 먼저&amp;nbsp;감사를 드렸습니다.&amp;nbsp; 그리고는 16강이 확정되자 그 기쁨을&amp;nbsp;주님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 제일 먼저 올려 드린 것입니다.&amp;nbsp; 얼마나 든든한 모습입니까?&amp;nbsp; 이번 16강의 확정을 통하여 제 자신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amp;nbsp; 한국 축구가 16강에 들었듯이 한국 축구를 사랑하며 바라보는 관중도 16강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저는 이번 경기를 보면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선수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많이 미워하였습니다.&amp;nbsp;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지요.&amp;nbsp; 이제는 제가 사랑하는 한국의 축구가 sweet sixteen이 되었으니 그 경기에 응원으로 참여하는 저도 sweet sixteen에 걸맞은 성숙한 자가 되어야&amp;nbsp;겠습니다.&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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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음을 준비하시나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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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6-19T17:13:55-06:00</published>
      <updated>2010-06-22T22:35:39-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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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저는 오늘 사랑하는 친구를 하나님품으로 먼저 보내고 그 몸을 한폭 남직한 땅에 묻고 왔습니다.&amp;nbsp; 비록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주님의 사랑안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고 함께 교제한 친구입니다.&amp;nbsp;&amp;nbsp;그리고 주신 목회자의 길을 같이 걷던 동역자이기도 합니다.&amp;nbsp; 46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짧으면 짧다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amp;nbsp; 장지에 서 있는 내내 사랑하는 친구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amp;nbsp; &quot;목사님 나는 목사님 보다 짧게 살겠지만 그러나 목사님 보다 더 굵게 살 겁니다.&quot;&amp;nbsp; 이런 농담을 하며 죽음을 준비한 친구입니다.&amp;nbsp;&amp;nbsp;그리고는 정말 그의 말대로 굵게 살다 갔습니다.&amp;nbsp; 18년하고 6개월 전 간에 지병을 갖고 있던 그는 의사로부터 길어야 16년을 산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amp;nbsp; 그때부터 그의 삶은 그 누구 못지 않는 열정적이 삶이었습니다.&amp;nbsp; 간혹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 못가서 끝난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삶이 균형을 잃고 또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는 삶을&amp;nbsp;사는데 제 친구는 오히려 더 목적이 뚜렷한 삶을 살았습니다.&amp;nbsp;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아내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으며 하나님이 주신 세 자녀를 밈음의 일꾼으로 그리하여&amp;nbsp;차 세대를 이끌어갈&amp;nbsp;리더로&amp;nbsp;잘 양육하였습니다.&amp;nbsp;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의 18년의 세월을 하나님께&amp;nbsp;헌신하였습니다.&amp;nbsp;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amp;nbsp;뚜렷한 개성(?) 으로 많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지만, 그의 장점은 다른데 있었습니다.&amp;nbsp; 긴 몸위에 있는 얼굴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amp;nbsp; 울분을 토할 때도 그의 얼굴은 웃는&amp;nbsp;얼굴이고 심각한 대화를 나눌 때도 그의 얼굴에는 늘 여유있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amp;nbsp; 그리고는 늘&amp;nbsp;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던 친구였습니다.&amp;nbsp; 일주일 전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를 찾았을 때 저를 보자마자 한 첫마디가 이렇습니다.&amp;nbsp; &quot;목사님 어떻게 왔어요?&amp;nbsp; 이 시간은 목사님이&amp;nbsp;말씀보며 기도하는 시간인데.&quot;&amp;nbsp; 그러면서도 저의 손을 잡고 좋아하던 친구입니다.&amp;nbsp; 이런 친구가 오늘 하나님 품으로 본향으로 돌아걌습니다.&amp;nbsp;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 친구.&amp;nbsp; 고별 예배 때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이 디모데후서 4장 7절의 말씀을 하시며, 이 말씀이 저의 친구의 삶을 대변하는 말씀이라 했습니다.&amp;nbsp; &quot;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quot;&amp;nbsp;&amp;nbsp;그리고&amp;nbsp;8절입니다.&amp;nbsp; &quot;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amp;nbsp;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quot;&amp;nbsp; 제 친구는 죽음을 준비하며 믿음의 길을 달렸습니다.&amp;nbsp; 이게 그에게는 주님이 예비하신 환한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amp;nbsp;&amp;nbsp;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나요?&amp;nbsp;&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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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의 전염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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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6-17T17:04:25-06:00</published>
      <updated>2010-06-22T10:54:45-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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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잃어버렸던 지갑에&amp;nbsp;없던 돈이 채워져 돌아온 기사을 읽었습니다.&amp;nbsp;&amp;nbsp;뉴햄프셔 주에 살고 있는 니콜 파리조라는 여인은 얼마 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amp;nbsp;&amp;nbsp;둘째 아기를 낳은 지 며칠 후라 정신이&amp;nbsp;없었던 그녀는 어디서 지갑을 잃어 버렸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amp;nbsp; 지갑 안에 있던 카드의 소실을 위해&amp;nbsp;분실 신고를 하고 포기를 했는데 얼마 후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amp;nbsp;&amp;nbsp;전화 속 남자는 생일 선물로 백팩가방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그 안에 지갑이 있어 열어보니 파리조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래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amp;nbsp;&amp;nbsp;그녀는 &amp;nbsp;비로소&amp;nbsp;얼마전에&amp;nbsp;산 새가방을 반품하면서 그 안에 지갑을 넣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amp;nbsp;&amp;nbsp;그녀는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정신이 없었다고 설명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amp;nbsp; 일주일이 지난 후 돌아온 지갑을 살피던 파리조는 깜짝 놀랐습니다. &amp;nbsp;지갑 안에 없던 현금 150달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amp;nbsp; 그리고는 현금과 함께 있던 명함을 발견한 파리조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amp;nbsp; 그 남자가 보낸 답장에는 &quot;나도 아이가 네 명이 있어 얼마나 정신없는지 잘안다. 얼마 안 되지만 도움이 됐으면 한다&quot; 란 말과 함께 &quot;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길 바란다&quot; 고 적혀 있었습니다.&amp;nbsp; 감사의 이메일을 보낸 파리조는 오래간 만에 맞은 한가한&amp;nbsp;토요일 오후 쇼핑몰을 갔다가 &apos;골수기증&apos; 지원을 독려하는 단체를 지나가게 됐습니다.&amp;nbsp; 이 단체는 지역 주민이자 세아이의 아버지로 백혈병 환자인 아담 캐슬을 위한 단체였습니다.&amp;nbsp;&amp;nbsp;파리조는 문득 그 남자의 &apos;기회가 생긴다면 댜른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기 바란다&apos;는&amp;nbsp;이메일이 생각나 골수기증 지원서에 등록을 했다 합니다.&amp;nbsp;&amp;nbsp; 
&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p class=&quot;바탕글&quot;&gt;한 사람의 선행이 다른 선행을 부른 것입니다.&amp;nbsp;&amp;nbsp;정말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기사입니다.&amp;nbsp; 아름다운 선행의 테이프를 끊은 그분이 저는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amp;nbsp; 물론 아닐&amp;nbsp; 수도 있습니다.&amp;nbsp;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amp;nbsp;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전염이 되었으면 합니다.&amp;nbsp; 그래서 내가 행한 작은 사랑의 손길이 눈덩이가 불어나듯 불어나&amp;nbsp;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온 세상을 감싸주었으면 합니다.&amp;nbsp;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안일까요?&amp;nbsp; 그리고 또 하나 빛나는 그분의 행위가 있습니다.&amp;nbsp; CNN이라는 방송이 이 남성을 인터뷰하려고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 본인이 익명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라고 보도했습니다.&amp;nbsp; 하나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amp;nbsp; &quot;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quot;(마 6:3-4b)&amp;nbsp; 
&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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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p&gt;&lt;/p&gt;&lt;/p&gt;&lt;/p&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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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딧 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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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6-03T15:33:35-06:00</published>
      <updated>2010-06-22T22:36:48-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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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quot;반딧 불&quot;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흐믓한 단어 입니다.&amp;nbsp; 지난 월요일입니다.&amp;nbsp; 모처럼의 휴일입니다.&amp;nbsp;&amp;nbsp;아내와 아들과 오랫만에 저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Centennial Park에 저녁을 먹고는&amp;nbsp;다녀왔습니다.&amp;nbsp; 호수를 중앙에 두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아름다운 공원입니다.&amp;nbsp; 그 산책로는 걷는 사람 뛰는 사람 혹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로입니다.&amp;nbsp; &amp;nbsp;저의 식구도 그 길을 걸으며 어둑 어둑해지는 황혼의 평온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한층 더 평온함을 더해주는 것이 있었습니다.&amp;nbsp; 바로 반딧 불입니다.&amp;nbsp; 거리의 가로등 처럼 환하지는 않았지만,&amp;nbsp;어두어지는 숲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도록 하기에는 충분하였습니다.&amp;nbsp;&amp;nbsp;10살 된 아들의 이런저런 반딧불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며 반딧불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amp;nbsp;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통하여 반딧불에 대하여 알아보니 이런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amp;nbsp; 다음은 인터넷에서 퍼온 글입니다. 
&lt;p&gt;보통 곤충의 복부에는 공기를 받아들여 운반하는 공기관(tracheal air tube)이 있는데, 반디의 경우에는 이 공기관이 광세포(photocytes)에 둘러싸여 있다.&amp;nbsp;광세포는 마치 오렌지의 겉껍질을 벗겼을 때 오렌지 조각 하나 하나가 한 덩어리로 붙어있는 모습 처럼, 쐐기 모양으로 생긴 세포 하나 하나가 층층이 구획을 지고 배열되어 있는데, 공기관에 가까운 안쪽은 세포 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빽빽히 자리를 잡고 있고, 외부로 향한 바깥 쪽은 투명한 렌즈 모습을 하고 있어 빛을 쉽게 밖으로 비춰 내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amp;nbsp;그리고, 광세포의 중심에는 페록시좀(peroxisome) 이라고 불리는 소기관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공기 중의 산소를 연소 시켜 반디 특유의 빛을 내는 곳이다.&amp;nbsp;말하자면, 전구의 중심에 있는 필라멘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amp;nbsp; &lt;/p&gt;
&lt;p&gt;반디가 빛을 내는 것은 우리에게는 신비할 수도, 혹은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반디 자신에게는 생존이 걸린 매우 중요한 행동이다.&amp;nbsp;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반딧불이 갖는 생물학적 중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amp;nbsp;첫째는, 적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시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반디의 몸에는 매우 불쾌한 맛이 나는 물질이 들어 있어, 다른 동물들에게 마치 “내가 바로 그 고약한 맛이 나는 반디에요, 그러니 나를 잡아먹지 마세요”라고 말하듯이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amp;nbsp;둘째는,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한 이유일텐데, 반딧불을 깜빡임으로써 수컷과 암컷끼리 서로 짝짓기를 하는 신호라는 것이다.&amp;nbsp;실제로 반딧불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서로 다른 종 간에 그 색깔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마치 사람이 개발한 모르스 무선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이 그 반짝 거리는 불빛의 횟수와 간격이 각 종마다 모두 다름을 알 수 있다.&amp;nbsp;예를 들어 북아메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lt;em&gt;Photinus pyralis &lt;/em&gt;라는 반디의 한 종은 수컷이 날아가면서 매 5.5 초 마다 평균 0.3 초 동안의 빛을 내보낸다.&amp;nbsp;그러면 땅위에 있는 암컷은 이 불빛을 본 후 약 2 초 후에 여기에 대한 반응을 내보내는데, 암컷으로부터 돌아오는 이 반응의 간격을 보고 수컷은 이 암컷이 자기와 같은 종임을 알고 같이 짝을 짓기 위하여 땅으로 내려온다.&amp;nbsp;같은 종내의 암수 상호 간에 서로 미리 약속된 신호와 그 해독 장치가 있지 않고는, 그들이 종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amp;nbsp;이것은 반디를 누군가가 설계하였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amp;nbsp;왜냐하면, 우연히 어느 반디 조상 중의 하나가 돌연변이에 의하여 예를 들어 2 초 간격의 반응신호를 내보내는 암컷을 태어나게 했다 하더래도 그 신호를 사전 약속에 의해서 인지할 수컷이 없으면, 그 새로운 반디의 종은 종을 유지 해 갈 수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amp;nbsp; 지구상에 2,000여 종이나 되는 반디들이 모두 서로 다른 신호를 가지고 자신의 종을 유지해가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우연이 될 수 없는 기적이요, 바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이다.&lt;br /&gt;&lt;br /&gt;이런 학문적인 것을 떠나서 저는 반딧불을 보면서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이런 것을&amp;nbsp;배웠습니다.&amp;nbsp; 세상의 빛인 전구에 비하면 미세할 정도로 희미하지만 그래서 존재초차 위협을 느끼지만 반딧불 한 가닥이 주는 평온함은 전구의 밝은 빛보다 훨씬 아름답다.&amp;nbsp; 그리고 반딧불을 이기적인 문명속에 한 순간의 신선함과 함께&amp;nbsp;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크리스천 인생의 목적을 생각나게 하는 빛입니다.&amp;nbsp;&amp;nbsp;&quot;너희는 세상의 빛이라&quot;&amp;nbsp; &quot;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quot;(마 5: 14ㅁ &amp;amp; 16)&lt;br /&gt;&lt;br /&gt;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반딧불과 같은 크리스천이 되었으면 합니다.&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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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ow with Church</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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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5-28T20:12:17-06:00</published>
      <updated>2010-06-22T22:37:52-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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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저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amp;nbsp;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입니다.&amp;nbsp;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목사가 교인과 아주 친하게 지내면 득도 되지만 때로는 흠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amp;nbsp; 그런데 저는 우리교회 성도님들과 아주 친합니다.&amp;nbsp; 그리고 지금까지는 흠보다 득이 훨씬 더 많습니다.&amp;nbsp; 그 중에 우리 교회에서 동시통역으로 수고하시는 아론집사님이 있습니다.&amp;nbsp; 주일 오후 가끔씩 믿음에 대해서 또는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하여 자주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지난 주일 오후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신 후 아론 집사님과 잠시 믿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amp;nbsp;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하는데 의견의 일치가 되었습니다.&amp;nbsp; 잠시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아론 집사님과 저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때로는 서로의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amp;nbsp; 그러나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그 대화가 아주&amp;nbsp;중요한 것은 비록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화합을 이끌어 내기 때문입니다.&amp;nbsp; 즉, 서로 자기의 주장을 강조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줌으로 나의 막혔던 생각이 열리고 보지 못하던 것이 새롭게 열리기 때문입니다.&amp;nbsp; 그래서 비록 아론 집사님과 저의 의견이 180도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대화를 통하여 좀 더 자란 믿음의 성숙을 이룹니다.&amp;nbsp; &amp;nbsp;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믿음이 한 곳에 정체된 믿음이 아니라 성장하는 믿음 그래서 어제의 믿음보다는 오늘의 믿음이 더 견고하고 오늘의 믿음보다는 내일의 믿음이 더 빛을 발해야 한다며 대화를 나누는 도중, 아론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amp;nbsp; &quot;But Rev. Chi, I believe that the faith has to grow with church.&amp;nbsp; If your faith is over grown church it will cause problem in church.&amp;nbsp; And at the same time if your faith under grown of church it will also cause problem in church.&quot;&amp;nbsp; 아론 집사님과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이 말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amp;nbsp; &quot;Your faith has to grow with church.&quot;&amp;nbsp;&amp;nbsp;참으로 아주 중요한 말이라 생각됩니다.&amp;nbsp; 저는 목회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지난 나날을 돌아보니 교회와 함께 성장하지 못한 믿음으로 인하여&amp;nbsp;문제점을 발생하게 한 경우를 많이&amp;nbsp;보고 들었습니다.&amp;nbsp;&amp;nbsp;교회보다 더 큰&amp;nbsp;믿음(?)으로 인하여 교회의 주인노릇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생긴 문제들, 그런가 하면 교회의 믿음에 동참하지 못하는 under grown&amp;nbsp;믿음으로 인하여&amp;nbsp;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생긴 문제들, 이렇게 성도의 믿음이 교회와 일치하지 않을 때 오는 부작용이 많이 있습니다.&amp;nbsp; 물론 각자 개인의 성향이 다르듯이 성도의&amp;nbsp;믿음이 모두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amp;nbsp; 그러나 그 믿음이 교회와 함께 한다면&amp;nbsp;서로 다른 믿음의 분량에서도 하나되는 일치를 구 할 수 있습니다.&amp;nbsp; &quot;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amp;nbsp;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amp;nbsp;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amp;nbsp;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amp;nbsp;계시도다.&quot;&amp;nbsp; -&amp;nbsp; 에베소서 4:1-6 -&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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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묘하신 하나님의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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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5-21T19:51:24-06:00</published>
      <updated>2010-05-21T19:54:00-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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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오늘 아침 교회에 오다가 체험한 것입니다.&amp;nbsp; 준 하이웨이 격인 216번에 들어서서 교회를 향해 오는데 별안간 거위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길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amp;nbsp; 새벽 길이라 마침 차가 많지 않아 제 차의 속도를 줄였습니다.&amp;nbsp; 그리고는 느린 속도로 다가가며 &apos;빵 빵&apos;하며 울렸지만, 날아갈 생각을 안하고 저를 뚜러지라 노려(?)보는 것입니다.&amp;nbsp; 50마일로 달여오던 제 자동차와 그 거위가 부딛쳤다면 어찌 되었을까요?&amp;nbsp; 그 거위가 치명상을 입었을 것입니다.&amp;nbsp;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저는&amp;nbsp;제&amp;nbsp;자동차의 속도를 줄여서 그 거위 옆을 피해서 왔습니다.&amp;nbsp; 그런데 그 거위 좀 보세요.&amp;nbsp; 자기 옆을 피해가는&amp;nbsp;저를 &apos;거 봐라 네가 감이 나에게 덤벼들어!&apos;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는 것입니다.&amp;nbsp; 그 거위&amp;nbsp;옆을 피해 도망(?)치듯 오며 기가 막혀 헛웃음을 웃었습니다.&amp;nbsp; 그러다가 별안간&amp;nbsp;저의 뇌를 스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amp;nbsp; &apos;도대체 저 거위는 무슨 배짱으로 저러나.&apos;&amp;nbsp; &apos;저 거위는 도대채 무슨 믿음이 있기에 저렇게 달려오는 자동차 앞에서도 눈끝하나 깜짝이지 않고 서 있나?&apos; &amp;nbsp;&apos;저 거위는 믿는 구석이 있나?&apos;&amp;nbsp; &lt;BR&gt;&lt;BR&gt;저는 요즘 고민에 감겼습니다.&amp;nbsp; 우리 이웃에 있던 1.5세 교회와 우리교회가 6월 첫주부터 통합하여 함께 비전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습니다.&amp;nbsp; 그동안 기도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amp;nbsp; 형제의 연합하는 아름다움 이지만 그래도&amp;nbsp;독립하였던&amp;nbsp;두 교회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매듭들이 있습니다.&amp;nbsp; 그 매듭들을 생각하며 행복한(?) 고민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amp;nbsp; 그런데 오늘 아침 도로 한 복판에 우뚝 서서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서게 만든 거위를 보면서 저의 믿음과 담대함을 되 돌아 보게 된 것입니다.&amp;nbsp; 우리의 하나되는 통합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amp;nbsp; 그 전에 연합하여 예배 드리는 날 모든 기상관계자들은 비가 올것이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평안을 주며 우리로 하여금 좋은 날씨를 기도하게 하셨습니다.&amp;nbsp;&amp;nbsp;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아주 좋은 날씨, 예배 후에 교회 운동장에서 함께 웃으며 게임도 하고 뛰 놀수 있는 날씨를 주셨습니다.&amp;nbsp; 그리고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왔습니다.&amp;nbsp; 그뿐만 아니라 우리교회의 성도님들과 통합하고자 하는 이웃교회의 성도님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칩니다.&amp;nbsp; 이것만 보더라도 두 교회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amp;nbsp; 그렇다면 풀어야 할 매듭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인데, 그것을 놓고 남들이 말하는 행복한 고민을 한 것입니다.&amp;nbsp; 이렇게 해 오던 필요치 않은 고민을 두 마리의 거위를 통하여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amp;nbsp; 참 오묘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안입니까?&amp;nbsp; &quot;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amp;nbsp;것을 할 수 있느니라.&quot;(빌 4:13)&amp;nbsp;&amp;nbsp;&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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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숨겨진 보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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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5-17T16:11:06-06:00</published>
      <updated>2010-05-17T16:28:51-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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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폭시의 &apos;순교자 이야기&apos;(Foxe&apos;s Book of Martyrs)라는 책이 있습니다.&amp;nbsp; 우리 기독교 역사에 순교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amp;nbsp; 읽을 수록 믿음에 도전을 주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숙연케합니다.&amp;nbsp;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조용히 눈을 감고 책에 나온 그 분들의 발자취를 더듬거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amp;nbsp;&amp;nbsp;이런 책에 기록되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사람들보다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떤 분들일까?&amp;nbsp; 그분들은 이런 책에 기록된 분들보다 조금 못한 분들일까?&amp;nbsp; 이름도 없이 죽어간 그 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뭐라하실까?&amp;nbsp;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일깨우는 성경귀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amp;nbsp; 믿음 장이라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입니다.&amp;nbsp;&amp;nbsp;히브리서 11장에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amp;nbsp; 그러다가 이름도 없이 그저 &quot;어떤 이들&quot;이라 불리우는 분들의 믿음과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나옵니다.&amp;nbsp; 그리고는 이런 분들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amp;nbsp;설명하고 있습니다.&amp;nbsp; &quot;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quot;(v 38)&amp;nbsp;&amp;nbsp;하나님의 칭찬과 신뢰가 가득한 너무도 귀한 말씀입니다.&amp;nbsp; 이런 분들을 세상이 감히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amp;nbsp; 무너트릴 수 없고 그 믿음을&amp;nbsp;빼앗을 수&amp;nbsp;없으며&amp;nbsp;세상이 그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 누군가 이런 말을&amp;nbsp;했습니다.&amp;nbsp; &quot;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 어떤 보석인가?&amp;nbsp;&amp;nbsp;그것은 숨겨진 보석이다.&quot;&amp;nbsp;&amp;nbsp;저는 이런 분들을 숨겨진 보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amp;nbsp; &lt;BR&gt;&lt;BR&gt;우리 교회에는&amp;nbsp;숨겨진 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amp;nbsp; 기도의 보석이 있고, 섬김의 보석이 있고, 나눔의 보석이 있으며, 함께하는 보석이 있습니다.&amp;nbsp; 예배하는 보석이 있습니다.&amp;nbsp; 이런 숨겨진 보석들로 인하여 우리 로럴침례교회는 존재합니다.&amp;nbsp; 그리고 이런 숨겨진 보석들이 있기에 우리에게는&amp;nbsp;&apos;세상에서 가장 모범된 교회, 이 시대의 교회다운 교회&apos;라는 비전이 있습니다.&amp;nbsp; 폭시의 순교자 이야기라는&amp;nbsp;책은 377페이지로 막을 내리지만 숨겨진 보석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amp;nbsp;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amp;nbsp;&amp;nbsp;우리 로럴침례교회의 숨겨진 보석님들,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amp;nbsp;화려한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과 신뢰를 얻는 영적 빛을 더욱 발합시다.&amp;nbsp; &quot;로럴침례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이 감히 감당치 못하도다!&quot;&amp;nbsp; &quot;아멘!!!&quo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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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욕심이 과하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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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5-08T10:34:07-06:00</published>
      <updated>2010-05-09T15:49:42-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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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FONT face=times size=3&gt;지난 주 중에 저와 친분이 있는 분의 부탁으로 함께 미국인 변호사를 만났습니다.&amp;nbsp;&amp;nbsp;저와 친분이 있는 분이 교통사고로 인해 법정에 가야 하기에 변호를 부탁하기 위함입니다.&amp;nbsp; 그런데 변호사와의 첫 만남을 한 후 저의 마음에 그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음을 알았습니다.&amp;nbsp; 그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동행했던 분도 다른 변호사를 찾아 보자고 합니다.&amp;nbsp; 그 이유인 즉&amp;nbsp;그 변호사가 변호해야할 사건은 제가 보기에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amp;nbsp; 참고로 저는 법에 대하여 무뢰한입니다.&amp;nbsp; 제가 보기에 간단하다는 것은 일반상식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간단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러다 보니 제가 전화상으로 그 변호사에게 제 아는 분의 상황을 설명을 했을 때 변호사도 기본금만 있으면 해결될 것 같다 했습니다.&amp;nbsp; 사실 기본금도 저의 수준에서 봤을 때는 높았지만...&amp;nbsp; 그래서 첫 conference 를 가졌습니다.&amp;nbsp; 그런데 conference 과정에서 자꾸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는 것입니다.&amp;nbsp;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를 상대방을 상대로 sue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래도 거기까지는 이해가 됐습니다.&amp;nbsp; 그러나 저의 이해를 받지 못한 것은 그 sue하자는 내용 입니다.&amp;nbsp; 제가 보기에 그것은 터무니 없는 억지에 불과합니다.&amp;nbsp; 일반상식에 비추어 봐도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amp;nbsp; 그런데도 불구하고 sue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제가 상식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냐며 반문하자 처음에는 대꾸도 안하더니&amp;nbsp;몇번을 계속해서 물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amp;nbsp; &quot;당신이 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quot;&amp;nbsp; 그래서 제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amp;nbsp; &quot;그렇다면 법이 일반상식 위에 있습니까?&quot;&amp;nbsp; 그 변호사가 sue하자고 하는 내용을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이렇습니다.&amp;nbsp; 제 차가 운전 중에 고장이 나&amp;nbsp;사고가 생겼습니다.&amp;nbsp; &amp;nbsp; 그러니 제 차가 고장이 생길 때마다 가서 고치는 정비소를 고소하자는 것입니다.&amp;nbsp; 이게 말이 됩니까?&amp;nbsp;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에게 물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amp;nbsp; 그런데 그 변호사는 정비소를 상대로 sue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 변호사가 이런 터무니 없는 상황을 만들자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라 저는 생각됩니다.&amp;nbsp; 변호사비를 더 많이 받기 위함입니다.&amp;nbsp; 물질의 욕심 때문에 그 변호사는 양심을 파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amp;nbsp; 나중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말고 당신이 변호해야 할 일만 해달라고 하자 뭐라했는지 아십니까?&amp;nbsp; 변호사비를 2배로 달라는 것입니다.&amp;nbsp; 왜 전화상으로 한 말하고 틀리냐 물었더니 오늘 예상 외로 conference에 들어간 시간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실강이를 벌이다 나오는데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서 하는 말 &quot;자기는 시간을 팔사서 먹고사는 사람이다.&amp;nbsp; 그렇다면 더 깎아 줄테니 나에게 맡겨라.&quot;&amp;nbsp; 욕심이 과하니 추하게만 보여 집니다.&amp;nbsp; 어려움에 처한 사람&amp;nbsp;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그 영혼이 불쌍하게만 느껴집니다.&amp;nbsp;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그 변호사를 돌아보니 &quot;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니라&quot;라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lt;/FONT&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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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간 엄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중요한 요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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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5-01T12:01:14-06:00</published>
      <updated>2010-05-07T15:49:05-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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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지난 주중 어느 모임의 사회자로 나갔습니다.&amp;nbsp; 제가 사회를 보며 그 모임을 잘 이끌어가야 할 시간이 2시간입니다.&amp;nbsp; 그리고 저에게 4분의 Speaker가 주어졌고 중간 중간에 필요한 광고와 멘트가 저의 담당입니다.&amp;nbsp;&amp;nbsp;그래서 시간 배정을 고민고민하며 정하여 Speaker 분들께 드렸습니다.&amp;nbsp; 특히 3번째와 4번째 Speaker가 그날 모임의 주 강사이기에 다른 분들 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해 드렸습니다.&amp;nbsp; 첫번째 Speaker가 자신의 시간대를 잘 조정하여 아주 훌륭하게 하셨습니다.&amp;nbsp; 그런데 2번째로 나오신 Speaker께서 시간 엄수의 부탁을 드렸지만&amp;nbsp;워낙 할 말이 많아서 인지 시간에 관계없이 자신의 뜻대로 함으로 많은 분들의 원성을 사는 일이 있었습니다.&amp;nbsp;&amp;nbsp;한국에서 오신 분인데 예의 차 시간을 내어 드린 것입니다.&amp;nbsp; 그런데 그 분 왈 &quot;이런데 오면서 일찍 끝나거나 시간 안에 끝나기를 바라는 분은 지혜로운 분이 아닙니다.&quot;하면서 본인에게 할당된 시간의 거의 2배 이상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amp;nbsp; 바쁘다고 하시는 3번째와 4번째 Speaker를 간신히 모셨는데, 그분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amp;nbsp; 그래도 그 분들이 당신들이 준비해온 것을 더 짧게 간추려 좋은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amp;nbsp; 이것을 경험하면서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amp;nbsp; 사람의 마음을 사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Communication의 Technic이 많이 있겠지만, 청중의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그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쫗는 것 중에 결정적인 것이 규율을 어겨 가면서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amp;nbsp; 물론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amp;nbsp; 그리고 매우 훌륭한 내용들이며 목회자들에게 도전이 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amp;nbsp; 그러나 모임이 끝나고 질문과 답변시간에 그분에게 질문을 던지는 분이 한분도 없음은 웬일일까요?&amp;nbsp; 그래서 그런지 잠언 10장 19절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amp;nbsp; &quot;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quot;&amp;nbsp;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입니다.&amp;nbsp; 이것은 남녀노소, 물질의 많음과 적음, 학문의 높음과 낮음, 지위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창조자의 평등입니다.&amp;nbsp;&amp;nbsp;그러기에 매우 귀한 것입니다.&amp;nbsp; 그리고 내 시간이 귀한 만큼 다른 분들의 시간 또한 귀한 것입니다.&amp;nbsp; 이 시간을 잘 활용함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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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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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4-23T20:48:30-06:00</published>
      <updated>2010-04-27T16:37:05-06: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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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quot;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amp;nbsp; 새 노래로...&quot;&amp;nbsp; 우리 교회 찬양팀이 지금 한참 이번 주일 찬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amp;nbsp;&amp;nbsp;모두들 바쁘지만 매주 금요일 마다 시간을 내어 찬양을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만 합니다.&amp;nbsp; 그들이 소리로 고백하지 않아도&amp;nbsp;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그들의 얼굴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쓰여 있습니다.&amp;nbsp; 사무실에 앉아&amp;nbsp;말씀을 준비하다 이 찬양을 들으며 따라 합니다.&amp;nbsp; 그러다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amp;nbsp;있는 저의 칼럼을 통하여&amp;nbsp;다시 한번 고백합니다.&amp;nbsp;&amp;nbsp;&quot;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quot;&amp;nbsp;&amp;nbsp;오늘 아침&amp;nbsp;QT 시간에 역대하 20장을 읽었습니다.&amp;nbsp; 우리교회는 매일 아침 성경 한 장을 읽고 묵상하는데, 오늘 읽은 부분이 역대하 20장입니다.&amp;nbsp; 특히 15절 말씀을 읽다가 가슴 가득히 밀려오는 평강에 오히려 눈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amp;nbsp; &quot;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quot;&amp;nbsp;&amp;nbsp;우리 교회는 오는 주일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amp;nbsp; 예배후 교회 뜰에서 Picnic을 가질 계획인데,&amp;nbsp;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온다는 것입니다.&amp;nbsp; 처음 이 반갑지 않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amp;nbsp;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amp;nbsp; 그리고 수요예배 때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 할 때만해도 날씨가 좋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amp;nbsp; 그런데 날이 갈 수록 걱정이 생기는 것입니다.&amp;nbsp; 그런데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묵상하며, 아무리 큰 먹구름이 몰려온다 해도, &apos;이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amp;nbsp;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일이다.&apos;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마무리 기도를 했습니다.&amp;nbsp; &quot;하나님, 하나님께 속한 일이온즉 하나님이 알아서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quot;&amp;nbsp;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저의 믿음이 부족한 것인지, 여전히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amp;nbsp; 하나님께서 이러한 저를 걱정하셨는지, 오늘 저녁 뉴스 시간 일기예배 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amp;nbsp; &quot;토요일 오후 부터 비가&amp;nbsp;오다 일요일 아침에는 그치겠습니다.&amp;nbsp; 그리고 늦은 오후부터 다시 비가 오겠습니다.&quot;&amp;nbsp; 할렐루야!&amp;nbsp; &quot;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amp;nbsp; 비록 나의 믿음이 작을 지라도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나의 주님을 나는 사랑합니다!&quo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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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슴 가득한 사랑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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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2-22T20:19:12-07:00</published>
      <updated>2009-12-23T07:09:57-07: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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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left&gt;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내린 눈으로 인해 온 천지가 하얗게 덮혔습니다.&amp;nbsp; 그것도 무릎까지 내린 폭설입니다.&amp;nbsp; 눈이 너무 많이 쌓이면 나중에 힘들것 같아 중간중간에 나가 눈을 치워보려고 치웠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허리와 어깨와 온&amp;nbsp;몸의 통증으로 체험했습니다.&amp;nbsp;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눈을 보니 역시 자연은 우리 인간의 힘 보다 큽니다.&amp;nbsp; 연실 굽혔다 폈다하며 삽으로 눈을 떠낸 덕분에&amp;nbsp;허리의 아픔이 제법 큽니다.&amp;nbsp; 집안으로 들어와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저의 집 막내놈이 연실 좋아하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quot;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quot;하는 것입니다.&amp;nbsp;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눈을 많이 내려주셔서 학교에 안가게 되어 좋다는 것입니다.&amp;nbsp;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순간 느낀 것이 &apos;그렇다, 자연의 힘이 대단하지만 그 자연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을 위해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더 크시다.&apos; 입니다.&amp;nbsp; 이런 크신 하나님을 가슴에 품어 보셨는지요?&amp;nbsp; &lt;BR&gt;토요일 내내 근심과 걱정에 싸였었습니다.&amp;nbsp; TV 뉴스에서는 폭설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고 여기 저기에서 모임이 캔슬되고 또 교회들 마다 주일예배가 캔슬됐다는 것입니다.&amp;nbsp; 저도 역시 토요일 오후 교회를 들러보기 위해 나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amp;nbsp;쌓여 교회 주차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와야만 했습니다.&amp;nbsp; TV를 통하여 주일예배가 캔슬되었다는 이런 뉴스를 들으며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우리교회 운영위원 집사님들과 의견을 나누어&amp;nbsp;주일예배를 캔슬했습니다.&amp;nbsp; 그러나 마음속에 쌓여있는 주님께대한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amp;nbsp; 더군다나 성탄주일인데 말입니다.&amp;nbsp; 그런 와중에 제가 앉아있는 맞은편 벽에 누군가가 그린 예수님의 사진과 그 옆에 있는 잠언 26장 3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amp;nbsp; 순간적인 환상이었는지 그림 속의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amp;nbsp; &lt;BR&gt;&quot;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amp;nbsp;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quot;&amp;nbsp;&amp;nbsp;이 말씀과 함께 저의 마음에 싸였던 근심 걱정 미안함이 눈 녹듯이 녹으며 가슴 가득히 하나님의 사랑이, 폭설을 내리게 하는 자연의 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힘이 내려 앉는 것입니다.&amp;nbsp;&amp;nbsp;&lt;BR&gt;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번 성탄주일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했지만 우리의&amp;nbsp;허공 뿐이 삶을 사랑과 위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가슴 가득히 품어 보시기를 바랍니다.&amp;nbsp; 그리고 가슴 가득히 싸인 주님께 대한 사랑을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를 통하여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lt;BR&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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