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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내린 눈으로 인해 온 천지가 하얗게 덮혔습니다. 그것도 무릎까지 내린 폭설입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이면 나중에 힘들것 같아 중간중간에 나가 눈을 치워보려고 치웠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허리와 어깨와 온 몸의 통증으로 체험했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눈을 보니 역시 자연은 우리 인간의 힘 보다 큽니다. 연실 굽혔다 폈다하며 삽으로 눈을 떠낸 덕분에 허리의 아픔이 제법 큽니다. 집안으로 들어와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저의 집 막내놈이 연실 좋아하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것입니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눈을 많이 내려주셔서 학교에 안가게 되어 좋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순간 느낀 것이 '그렇다, 자연의 힘이 대단하지만 그 자연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을 위해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더 크시다.' 입니다. 이런 크신 하나님을 가슴에 품어 보셨는지요? 토요일 내내 근심과 걱정에 싸였었습니다. TV 뉴스에서는 폭설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고 여기 저기에서 모임이 캔슬되고 또 교회들 마다 주일예배가 캔슬됐다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토요일 오후 교회를 들러보기 위해 나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교회 주차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TV를 통하여 주일예배가 캔슬되었다는 이런 뉴스를 들으며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우리교회 운영위원 집사님들과 의견을 나누어 주일예배를 캔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쌓여있는 주님께대한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성탄주일인데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앉아있는 맞은편 벽에 누군가가 그린 예수님의 사진과 그 옆에 있는 잠언 26장 3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적인 환상이었는지 그림 속의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이 말씀과 함께 저의 마음에 싸였던 근심 걱정 미안함이 눈 녹듯이 녹으며 가슴 가득히 하나님의 사랑이, 폭설을 내리게 하는 자연의 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힘이 내려 앉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번 성탄주일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했지만 우리의 허공 뿐이 삶을 사랑과 위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가슴 가득히 품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슴 가득히 싸인 주님께 대한 사랑을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를 통하여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2006년 1월 1일을 기해 우리교회에서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자' 라는 의미로 교회차원의 성경읽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성경을 몇 독씩 하였겠지만, 교회적인 차원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에서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된 성경읽기는 2009년 4월 2일 오늘을 기하여 요한계시록 22장 21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로 막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동안 이 계획을 멈추고자 하였던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 힘을 주시고 오늘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시편 1편에도 있듯이 "복 있는 사람은 ...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오늘 일독을 마치는 기쁨과 함께 바램이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성경읽기 제 이독이 들어가는데, 행여 일독을 하면서 함께하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동참하여 제 이독을 마치는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한국인 최초로 우주인이 된 이소연씨와의 대담을 보게되었다. 그때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하였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동안 지구의 모습을, 찰영된 사진으로 많이 접했고 연구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 올라가서 지구를 바라 보니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알 수 없던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봤습니다. 저의 짧은 언어로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한, 그 어떤 생명력이 넘치는 지구를 바라보며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력이 흐른다는 이 표현을 듣는 순간 저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성경의 첫 구절을 떠 올렸습니다. 이소연 우주인이 봤다는 그 생명력이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안일까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지금 온 세상에 충만합니다. 저의 집앞에 수선화가 몇뿌리 심겨져있는데, 벌써 노란 수선화를 예쁘게 피웠습니다. 그리고 가지마다 새싹의 봉우리를 달고 시간과 race하듯 하루가 다르게 변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있는 그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합니다. 아침 기온이 아직 쌀쌀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오랬만에 숲속을 거닐며 잠을 깨우는 새벽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숨결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들이 마시고 싶다는 심정으로 말입니다.많이 힘드시지요. 그래도 힘 내세요. 창조의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창조신앙'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는데, 이 창조신앙을 늘 기억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벽을 깨우며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는데,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매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올해에는 이런일들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하게됩니다. 그런데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각오가 결실로까지 연결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흐지부지 없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은 믿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가 되면 성도님들은 믿음생화에 관하여 새로운 각오를 합니다. 성경을 통독하겠다, 기도 생활을 철저히 하겠다, 예배 생활에 좀 더 열심히겠다, 등등 여러가지 각오의 꽃을 활짝 피우지만, 그 각오의 꽃이 열매로 맺히기 전에 모진 비바람에 꽃이 떨어지듯 낙화하고 맙니다. 이런 일을 가리켜 세상에서는 의지가 부족하여 그렇다고들 말합니다. 물론 그런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작심삼일의 직접적인 원인은, 내 의지의 연약함이라기 보다는 주님이 없는 나 혼자만의 각오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우리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생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속에 땅을 정복하고 충만케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에젠트라는 것입니다. 에젠트는 자기만의 생각대로 계획을 짜서 행동하지 않습니다. 항상 상관과의 긴밀한 관계속에서 계획을 세워 그 일을 이루기위해 헌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에젠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갖는 계획과 각오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어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촛불을 밝혔습니다. 단상 가운데에 준비된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촛불에서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은 깨끗하고 하얀 초에 불을 붙혀 놓았습니다. 이 촛불의 의미는 각 가정별로 개인별로 다를 것입니다. 믿음의 촛불이기도 하고, 소망의 촛불이기도 하고, 치유의 촛불이기도 하고, 바램의 촛불이기도 하고, 평안의 촛불이기도 하고, 등등 여러가지 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우리가 밝혀놓은 모든 촛불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로럴침례교회 가족님들, 우리가 어제 밝힌 촛불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내내 늘 밝게 빛나기를 바랍니다.2009년 1월 1일 아침에
29번 도로를 타고 달리노라면 길 가에 서있는 많은 나무들을 보게됩니다. 여러종류의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온갖 나무 잎들이 넘실댑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각자의 색동옷을 자랑하듯 총 천연색으로 물듭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니 모두들 싸늘할 정도로 냉정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온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가지들만 무성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저의 눈길을 빼앗은 나무가 있습니다. 말라버린 잎사귀를 그대로 달고 있는 나무입니다. 몇일 전에 매서운 겨울의 첫 맛을 봤지만, 지붕에 달려있는 연통의 뚜껑이 불어오는 바람에 박자를 맞추듯 요란스럽게 흔들렸지만, 그 나무의 메말라버린 잎사귀는 그대로 달려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참 나무였습니다. 다른 모든 나무의 잎사귀는 겨울의 호독함을 이기지 못하고 길거리의 낙엽이 되어 겨울을 사랑하는 시인의 발걸음에 운치를 더 하건만, 이 참나무의 잎사귀는 옛날이 되어버린 메마른 입사귀를 고집스럽게 달고 있습니다.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떨어지지 않는 낙엽이 우리의 옛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에게도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옛모습이 있습니다. 생각은 간절한데 아직도 남아서 저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저로 실망케하는 옛 습성들입니다. 물론 그누구도 완벽한 자가 없지만, 그래도 목사이기에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이 간절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길을 가다 아직도 무성한 입사귀를 달고 있는 나무아래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에도 이렇게 떨어지지 않은 메마른 잎사귀를 달고 있었을 텐데 그것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겨울의 첫걸음인데 벌써 봄을 얘기 한다면 성급하겠지만, 봄이 오면 겨울내내 그 매서운 북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달려있던 옛 습성의 잎사귀들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봄까지 기다리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린다면, 봄이 오면 따뜻한 봄 바람과 함께 솟아나는 새싹이 메말라버린 옛 잎사귀를 밀어낼 것입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옛 모습, 옛 습성으로 힘드신 분들에게, 제 자신을 포함하여,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 보세요, 그리고 주님과 함께해 보세요. 예수님으로 인하여 솟아나는 새영성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의 옛모습을 밀어낼 것입니다. 고난과 시험과 어려움의 절망스러운 바람으로도 떨어지지 않은 옛 잎은 내 속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솟아나는 새 힘으로 인하여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